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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취 아카데미

집단이 형성되고 개개인을 연결해 주는 통신수단의 필요성이 대두하면서 우편은 등장과 함께 급성장하게 됩니다.

우취 아카데미
제목 근대한국사용 철도우편인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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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강해원은… 20대 초반부터 우리나라 근대통신사(우표, 전보, 전화) 자료를 수집, 정리하고 있는 아마추어 역사가이자 우취인(Philatelist)입니다. 대한우표회 회원이기도 하지요. 우표는 열 살 때부터 수집하기 시작해서 현재는 한국 우편사는 물론 세계 각국의 테마자료(통신 관련, 해양생물, 극지, 적십자, 낙하산 등)도 열심히 수집하고 있으며, 덕분에 가끔 역사 관련 자료를 매스컴에 제보해 특종 보도되는 재미있는 일도 있답니다. 앞으로 몇 회에 걸쳐 독자 여러분과 철도우편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많은 성원 바랍니다. <편집실>


철도가 개통되기 전 대한제국 시기의 우편물 체송은 주로 사람이나 말을 이용한 것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899년(광무3년) 9월, 경인선(노량진-인천, 다음 해 11월 경성-인천)이 개통되면서 철도를 통한 신속한 우편물 체송이 가능해졌지만 체전부가 행랑을 메고 열차에 탑승하여 이동하는 형태로 운영되어 철도우편인은 사용되지 않았다. 이후 1903년 말부터 공사 중인 경부선의 부분 준공구간을 이용한 철도 체송이 이뤄졌으나 이 역시 실체우편물에 날인된 일부인을 보고 철도 체송을 미루어 추정할 수 있을 뿐 철도우편인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논외로 한다.


1905년 1월 1일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운행 중인 열차에 우편계원이 탑승하여 우편물을 접수하고 우편물에 철도우편인을 찍어 체송하면서 본격적인 철도우편이 시작되었다. 이런 점에서 철도우편은 단순히 철도를 통해 체송된 일반우편물과는 구별되는 '달리는 우체국'의 흔적이므로 자료의 잔존량이 적어 실체를 수집하기가 어렵고, 여러 노선을 골고루 수집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후 1906년 경의선, 1911년 호남선(대전-이리, 이리-군산), 1914년 경원선(경성-세포) 등 간선철도가 순차적으로 완공되면서 우편체송시간은 눈에 띄게 단축되었고 철도우편인을 사용하는 노선도 점차 확대되었으나, 간선과 지선 또는 지선과 지선을 연결하는 신설노선의 사용례를 수집하여 각 노선별 최초·최후기 사용내역이라도 규명코자 이미 고인이 된 두 분, 석산 진기홍 선생과 찬하 최순석 선생 등이 1980년대 초부터 애썼으나 자료의 부족과 관련 고시나 기록 등의 미흡으로 크게 진전되지 못했고, 개인 수집가 몇 분에 의해 소량의 철도우편인 자료가 수집되는 데 그치고 있음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에 필자는 현재까지 수집된 자료를 중심으로 철도우편인을 처음 사용한 1905년(대한제국 시기)부터 1945년 해방될 때까지 우리나라에서 사용된 철도우편인의 개략적인 변천 과정과 노선별 사용례를 우선 정리하고, 차후에는 동호인들의 협조를 얻어 이를 보완하면서 해방 후 대한민국 철도우편인 변천 과정과 사용례까지 완전히 정리, 규명하는 데 일조하고자 한다.


근대한국의 철도우편인은 일본의 우편인을 그대로 도입하여 초기에는 원일형(1905-1906)이 사용되었으며[그림 1], 1907년에는 일부인 하단에 꽃문양 세 개와 시각표시가 들어간 형태의 우편인도 단기간 사용되었다.


1907년 후반부터 1921년까지 사용된 E란에 굵은 선이 들어간 형태의 일부인은 오직 한국 내에서만 사용되었으므로 이를 '한국형 철도우편인'이라 칭하고 편명의 표기방법에 따라 세 가지로 구분하여[그림 2, 3, 4] 그 사용례를 정리하고자 한다.


1922년에는 D란에 빗살무늬를 넣고 편명표기를 E란으로 통일하는 철도우편인 개정[그림 5 참조]이 있었으며(총독부 고시 제280호), 1928년에는 시각표시를 없애고 D, E란에 빗살무늬를 넣는 철도우편인으로 개정(총독부 고시 제334호)[그림 6 참조]되어 1945년 해방될 때까지 사용되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최초의 철도우편인은 1905년(광무9년) 1월 1일 경부선 전 구간이 준공 개통되던 첫 날 사용된 1905년(명치38년) 1월 1일자 일본식 원일형 철도우편인이 찍힌 엽서 실체이다. 그러나 이 일부인을 살펴 보면 열차운행구간을 지운 상태이므로 시험 운행기간 중 사용한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그림 7, 『한국철도 100년 자료집』 1995년 철도청 공보담당관실 발행.]


원일형 철도우편인의 형식은 일반우편(국·소·급)과 임시우체소에서 쓰던 원일형 우편인과 같은 내경 23mm이며 철도우편 아래 '부산경성간'을 두 줄로 표시하고 그 아래 연월일, 맨 밑에 편명을 표시하였으나 이 우편인의 실체는 매우 드물어 비교 분석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최근에 필자가 입수한 1906년 자료[그림 8]를 이노우에(Kazuyuki Inoue MD) 작품집에 있는 1905년 실체[그림 9]와 비교해 보면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어 매우 흥미롭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원일형 일부인은 형식의 변화 없이 약 1년 반 정도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어 왔으나 비교 결과 1905년에는 중간에 분리선이 있었고, 1906년에는 분리선 없이 사용된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필자의 원일형 철도우편인 실체는 가장 아끼는 수집품으로 대구역에서 접수되어 청나라 장사(CHANGSHA)의 일본 재외우편국 영문 도착인, 즉 원일형 철도우편인에 I.J.P.O가 찍힌 유일한 사용례라 2011 대한민국 우표전시회에서 작품의 첫 틀 맨 앞에 배치하였다. 현재까지 확인된 원일형 철도우편인 사용노선은 경부선(당시엔 부산경성간)뿐이며, 1905년 1월 1일부터 1906년 8월 20일까지의 사용례가 알려져 있다. 그러나 경의선이 1906년 4월에 개통되었으므로 사용례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원일형 철도우편인 다음으로 사용된 꽃 문양들이 철도우편인(흔히 三花章이라 함, 그림 10)은 인영의 고시나 기록 등이 발견되지 않아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으나 1906년(광무10년) 말부터 원일형과 교체되어 사용된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꽃 문양들이 철도우편인의 형식은 A란에 철도구간명을 釜山京城間(부산경성간) 대신 釜山京城線(부산경성선), B란에는 연(명치 연호)월일, C란에는 출발 시각, D란에는 편명, E란에는 꽃 문양 세 개가 들어 있는 형태로 일본에서도 같이 사용되었으나 한국에서 사용된 실체는 매우 드물다. 현재까지 확인된 노선은 1907년 3월 10일과 동년 4월 14일 경성발 상1편 7시 40분 부산경성선 뿐이지만 경부선의 추가 발견이나 경의선(경성신의주)에서 사용된 실체가 발견될 가능성도 있다.


[월간 우표 2011.10월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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