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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화로 보는 우편 130년

일화로 보는 우편 130년 콘텐츠는 한국 우편에 대한 역사를 소소한 이야기로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일화로 보는 우편 130년
제목 역사속으로 사라진 철도우편열차
등록일 2015. 10. 13.
첨부파일 첨부파일없음
역사속으로 사라진 철도우편열차

"드디어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철도우편전용열차에 탑승한 승무원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하루에 천리를 달린다는 낭만도 한때의 꿈이었고, 그들은 우선 눈앞에 쌓여 있는 행낭부터 정리해야 한다. 부산이나 대구 등 먼 곳으로 가는 행낭은 안쪽으로, 수원이나 천안 등 가까운 곳으로 가는 행낭은 출입구 쪽으로 놓아 열차가 정차할 때 수도(受渡)하기에 편하도록 배치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우편전용열차에는 4명의 승무원이 동승한다. 전용열차를 지휘 감독하고 작업을 보조하는 편장, 장부를 정리하는 원부, 등기우편물을 취급하는 특수, 열차가 정차할 때 우편물을 내려주고 올려 받는 수도가 그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분업제도가 아니다. 그들은 지정된 일만을 취급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협동심이다. 서울역에서 출발하여 차내에 쌓여 있는 행낭이 완전히 구분 정리될 때까지 그들은 협심하여 행낭부터 정리해야 한다. 그런 다음 그들은 각자의 업무에 나서게 된다. 따라서 차내에서는 협동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우편열차는 두 칸으로 나뉘어 있다. 우편물이 들어 있는 행낭을 실은 행낭실과 우편물을 구분하고 사무를 볼 수 있는 우편실 겸 사무실로 구분된다.

행낭실로 들어서니 매캐한 먼지가 코를 찌르고 목을 찌른다. 기관지가 나쁜 사람으로서는 견디기 힘들 만큼 자극적이다. 우편 이용자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 줄 편지와 즐거움을 안겨 줄 소포를 담은 행낭에서 그처럼 많은 먼지가 나리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다.

잠시 그 이유를 생각해 본다. 우편물 자체에 먼지가 쌓여 있을 리 없으니 그 먼지는 필경 행낭에 묻은 먼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현업에서 행낭을 함부로 취급하는데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흔히 볼 수 있는 일로 현업에서 행낭을 질질 끌고 다니는데, 그때 행낭에는 많은 먼지가 묻게 되고 또 행낭의 소모율도 높다고 한다. 또 현업에서 행낭을 우편차에 실을 때. 우편차에서 열차에 싣기 위해 부려 놓을 때도 많은 먼지가 묻게 될 것이다. 그렇게 볼 때 행낭 취급에 보다 정성을 쏟았으면 하는 것은 비단 철도우체국 승무원만의 바람이 아닐 것이다.

차내가 차갑다. 밖은 영하 10도 안팎의 강추위. 차내는 한데나 다름없다. 깨진 유리창 틈으로 몰려드는 바람이 여간 차갑지 않다. 열차가 달림에 따라 바람은 한결 으스스하다. 필자는 두꺼운 스웨터에 코트, 털장갑을 낀 중무장 차림임에도 추위를 느끼는데 작업복 차림의 승무원들은 일에 쫓겨 바쁘기만 하다. 열차가 출발하기 직전 하얀 입김을 무더기로 내뿜으며 으스대던 스팀 시설은 폼만 쟀을 뿐 온기 한 가닥 내뿜지 않는다.

이래저래 철도우체국 승무원들은 고달프다. 추워도 몸을 녹일 수 없어 고달프고 하루 종일 서서 일해야 하기에 고달프다. 또한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운동을 해야 하기에 고단하다. 열차가 덜커덩거림에 따라 몸을 흔들거리면서 작업해야 하기에 별로 운동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중노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식사를 때에 맞춰 하기 어려워 자칫 건강을 해치기 쉽다."

위의 글은 체신부 기관지인 '체신'지 1976년 1ㆍ2월호에 게재된 '철마와 함께 달린다'라는 제목의 취재기사의 일부였다. 당시 저자는 그 잡지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우편전용열차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 부산에서 광주, 광주에서 서울을 잇는 코스를 따라 달리며 우편열차 승무원들의 작업 현장을 살펴볼 수 있었다.

1921년 철도우편국을 설치하고 1973년 우편전용열차를 운행하다

우리나라 교통의 동맥인 철도는 오랫동안 우편물의 중요한 운송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했다. 그 동안 철도청은 야간열차에 우편물 전용화차를 연결하여 우편물을 체송했다. 그렇다 해서 우편물만을 별도로 운송하는 열차를 운행했던 것은 아니다. 기왕에 운행하고 있는 무궁화호 등에 우편열치를 달아 우편물을 실어 날랐던 것이다.

우편물을 철도로 운송하는 철도우편은 그 역사가 매우 깊다. 우리나라 철도의 역사와 같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부선 철도가 개통한 것은 1905년 1월이었다. 이에 앞서 1904년에는 부산에서 북상하는 철도공사와 영등포에서 남하하는 철도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그 해 11월 남하하는 공사가 부강까지 개통되어 시험 운행을 하게 되었다. 그처럼 철도가 시험 운행을 할 때 하루에 두 번 철도를 이용하여 우편물을 운송했는데, 그것이 우리나라 우편물이 철도를 통해 운송되기 시작한 최초의 사례였다.

1895년 우편사업이 재개된 이후 주로 인편에 의존하던 우편물의 체송이 철도를 이용하게 되면서 상전벽해의 변화를 겪게 되었다. 체전부의 도보에 의존할 경우 11일이나 걸리던 서울ㆍ부산 간의 우편물 체송이 불과 1~2일로 단축되었다. 또한 철도의 부설이 의주와 원산 등지로 확대됨에 따라 우편물의 철도 이용이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그때부터 철도는 우편물의 가장 중요한 운송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1921년 일제는 경성철도우편국을 신설하여 그 동안 경성과 부산, 대전우편국이 나누어 맡고 있던 철도우편업무를 한 관서로 통합했다. 당시는 3등열차에 우편물 전용화차를 연결하여 우편물을 실어 날랐다.

철도우편 전용차

우편물 전용열차가 운행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였다. 1973년 2월 체신부는 우편전용열차를 마련하여 우리나라 우정사상 처음으로 서울ㆍ부산 간의 우편물을 운송했다. 600개 행낭을 실을 수 있는 우편열차는 매일 오전 6시 20분과 7시에 서울 용산역과 부산역을 출발하여 경부선 연변의 51개 우체국과 우편물을 교환했으며, 통상우편물은 물론 등기우편물과 소포우편물도 접수했다. 서울ㆍ목포 간을 왕래하는 우편전용열차는 이듬해부터 운행되었다.

1970년 7월 경부고속도로가 뚫리고 이어 고속도로망이 형성되면서 철도가 전담하다시피 한 우편물의 장거리 운송을 육로가 분담했다. 우편물의 장거리 운송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은 우편집중국의 등장이었다. 1990년 7월 서울우편집중국이 개국한 데 이어 동서울우편집중국이 설치되고 대구, 광주, 대전 등 전국의 주요 지점에 우편집중국을 설치하게 됨으로써 우편물의 육로운송망을 구축하게 되었다. 이어 2000년 2월 대전운송교환센터를 설치함으로써 우편물의 운송망을 철도운송망에서 '허브(Hub)와 스포크(Spokes)' 방식의 육로운송망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전우편교환센터가 문을 열면서 철도우편운송국이 문을 닫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편물 운송망이 철도에서 육로로 바뀐 것은 전국적인 우편집중국망이 형성되면서부터였다. 우편물의 정리, 소인, 구분, 파속 등의 옥내작업을 우편집중국의 자동화된 기계설비에 의해 무인으로 처리한 뒤 대전우편교환센터에서 교환하여 전국으로 자동차로 운송하게 되면서 철도를 거칠 필요가 없었다.

우정사업본부가 출범한 것은 2000년 7월이었다. 그때까지 전국에 세워진 우편집중국은 서울과 동서울, 대구, 광주, 대전, 수원, 청주, 원주 등 8개국이었다. 우정사업본부가 출범한 시점인 2000년 7월 부산, 부천, 전주, 제주 등 4개 지역에 우편집중국이 추가되었다. 뒤이어 2002년에는 의정부, 안양, 성남, 고양, 창원, 순천, 안동, 진주, 천안, 강릉 등 10곳의 우편집중국이 문을 열었다. 그처럼 1990년대부터 연차적으로 우편집중국을 건설한 결과 2002년에는 전국 22개 우편집중국과 대전운송교환센터로 구성된 우편집중국 중심의 우편물 처리 시스템을 완성할 수 있었다.

우정사업본부가 발족하면서 우편물운송망의 개편 작업을 주도한 부서는 우편사업단 국내우편과였다. 그 작업을 담당한 사람은 국내우편과 물류담당사무관 조규덕이었다. 당시 우정사업본부에서 내세운 우편물 소통의 목표는 4일 이내의 배달이었다. 그런데 그처럼 당연해 보이는 목표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었다. 그 이유를 추적해 보니 각 우체국에서 접수한 우편물을 우편집중국으로 보내는 시간 자체가 늦었던 것이다.

"당시는 서울시내에서 접수한 2호편 수집 우편물을 이튿날 오후 2시에 우편집중국으로 보냈기 때문에 우편물 송달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밑에 깔려 있는 우편물은 계속 남게 되어 바닥보기운동을 전개해야 할 지경이었죠. 그래서 서울체신청 운송과장, 서울우편집중국ㆍ동서울우편집중국 운송과장을 모아놓고 회의를 했어요. 우편물 운송을 하루라도 앞당길 수 있는 방안이 뭐냐는 것을 모색하는 회의였죠. 그때 내린 결론은 오후 2시에 우편집중국으로 보내던 우편물을 오전 8시 40분에 보내기로 했어요. 그렇게 해서 우편물의 4일 이내의 배달이 가능하게 되었던 거죠. 결국 대전우편집중국에 우편교환센터가 설치된 것이 4일 이내의 배달체제를 갖출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던 거죠."

우편물운송망 개편의 주역인 조규덕의 말이었다.

천안우정박물관 우편테마공원에 전시되어 있는 우편열차

대전우편교환센터의 운영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직송(直送) 방식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같은 지역으로 가는 우편물이 만차될 경우 대전우편교환센터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보내도록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편물의 송달 일수를 줄일 수 있고 대전우편교환센터의 업무량을 줄일 수도 있어 일거양득이었다. 그처럼 철도 대신 육로운송을 채택하게 되면서 우편물의 4일 이내의 배달이 가능해졌던 것이다.

"당시 저희가 강조했던 모토가 '직체결', '직팔렛', '직운송'이었어요. 한 마디로 같은 지역으로 가는 우편물은 한 팔렛에 넣어 한 차가 채워지면 바로 상대편 우편집중국으로 직송했어요. 그렇게 함으로써, 예를 들어 서울에서 지방으로 가는 우편물은 각 집중국별로 운송차 한 대 분량이 차면 대전교환센터를 거치지 않고 각 집중국으로 직송했던 거죠. 그처럼 육로운송이 발달함에 따라 철도운송의 비중이 뚝 떨어졌어요."

철도운송의 경우 결정적인 흠이 있었다. 매일 정해진 시간 외에는 운행할 수 없어 우편물이 급증할 경우에 대비하기 어려웠다. 한 마디로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신축성 있게 대응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처럼 대전교환센터의 운영으로 철도운송의 비중이 급감하자 우정사업본부는 2006년 5월 24일 철도우편업무를 관장하는 철도우편운송국을 폐지했다. 동시에 우편물을 실어 나르는 차량인 우편열차의 운행도 중지했다. 그렇다 해서 100년 이상 지속되어 온 우편열차의 운행을 전면 중단할 수 없어 서울ㆍ부산 간 2편과 서울ㆍ광주 간 1편 등 왕복 6편은 그대로 남겨두었다. 그들 우편열차는 승무원의 승차 없이 운행하는 무인운송으로 운영했다.  

철도우편 운송용으로 사용되었던 우편열차는 현재 천안에 있는 우정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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